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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프라이데이의 흑과 백

keyzine I 키진 2024. 11. 14. 22:01
검은 금요일? 블랙 프라이데이 (Black Friday)

 

 

국내에서는 11월 중순이 되면서 슬슬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시작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로, 미국 전역에서 연중 최대 규모 할인 행사가 벌어지는 날로써 1년 중 가장 큰 폭의 세일 시즌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런데 왜 하필 미국에선 매년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대형 할인 행사를 하게 된 걸까.

 

블랙 프라이데이가 정확히 언제부터, 어떻게 이 용어가 시작되었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미국 역사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1960년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교통경찰이 처음 사용한 은어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블랙’이라는 보편적인 느낌처럼 좋은 의미를 담은 말은 아니었다. 공휴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은 노동자, 쇼핑객, 관광객, 미식축구 관람객 등이 몰리면서 도시가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경찰들끼리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은어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대량소비문화 현상과 맞물린 황금 기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유럽에서 경제 호황기가 시작되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이 적극적으로 열리는 대량 소비문화 현상이 등장했다. 20세기 중반부터 미국인들은 시장이나 식료품점 대신 대형 백화점에서 물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는데 이같이 새로운 소비 패턴에 맞춰, 백화점은 블랙프라이데이를 연중 최대 할인 행사로 만들어 그동안 쌓인 재고를 처리할 기회로 삼았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에 물품을 구매할 수 있고, 판매자들은 악성 재고를 처리하고 재무 상태를 흑자로 돌릴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의 소비자와 기업들이 블랙프라이데이를 기다린다. 대표적인 ‘쇼핑 비수기’였던 11월은 이제 유통가의 최대 성수기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행사가 아닌 미국의 소매 경기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 블랙프라이데이

 

블랙프라이데이는 단순한 행사를 넘어 미국의 소매 경기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이자 경기 사이클의 한 단계로 취급한다. 이 시기는 미국에서 한 해 소비재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며, 동시에 12월 25일 크리스마스까지 ‘쇼핑’ 시기로 이어진다. 이 말인즉슨, 블랙프라이데이에 판매가 부진하다면, 내년 소매업 경기 역시 부진할 것을 의미한다.

 

 

딜레마에 빠진 소규모 브랜드들

 

 

국내 블랙프라이데이 현황은 어떨까. 최대 온라인 패션 플랫폼인 무신사는 2023년부터 연중 최대 규모 할인 행사인 ‘무진장 블랙 프라이데이(이하 무진장 블프)’를 진행했다. 특히 무진장 블프는 작년인 2023년 여름에 처음 진행되었는데 무진장 블프를 통해 무신사 스토어는 역대 최대 성과를 갱신했고, 브랜드 매출에도 도움이 됐으며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참여 확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무진장 블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요청 할인 폭이 너무 큰 것에 비해 수수료 인하율은 너무 작다는 것이다. 물론 참여를 하는 건 브랜드의 자유지만 참여를 안 하게 된다면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참여하면 이익률이 대폭 낮아진다. 결국 소규모 브랜드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무진장 블프에 참여를 하냐 안 하냐의 문제는 뒷전일 수 있다. 무진장 블프에는 수많은 브랜드들로부터 엄청난 양의 옷이 판매되기 때문에 블프가 끝난 이후에는 옷이 팔릴 리가 없다. 이미 살 사람들은 다 샀고, FW가 오픈되는 시점 사이인 비수기가 바로 시작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역효과를 맞이한다. 무신사를 제외한 타 유통망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 오프라인 유통의 경우 7월에 시즌오프를 진행하지만 무진장 블프는 한 달 전 진행되기 때문이다.

 

무진장만을 위한 브랜드들의 편법 사용 

 

 

할인율이 높다 보니 편법을 사용하는 브랜드들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 애초부터 블프의 할인율을 감안해 시즌 초 가격을 높여서 출시하거나 기존 제품 중 비슷한 퀄리티의 제품을 블프 용으로 저렴하게 따로 제작하는 브랜드도 있다고 한다. 해외의 저렴한 공장에서 생산해 품질은 떨어지더라도 가격을 맞추는 방법이다. 이에 대한 피해는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글을 마치며 

 

블랙프라이데이가 하나의 연중 대형 행사로 자리 잡히면서 소비자와 판매자들 모두에게 좋은 기회인 건 사실인 것 같다. 쇼핑을 평소 좋아하는 사람도 평소에 잘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좋은 가격과 큰 할인율로 평소보다 훨씬 좋은 기회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지갑 열기가 쉽고 이런 소비 경향을 파악한 판매자들은 재고 처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패션 생태계의 포식자 역할인 국내 대형 온라인 플랫폼으로 인해 많은 브랜드들과 소비자들이 피해로 시름시름 앓는 건 사실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무진장 블프가 재고 처리를 할 수 있는 큰 기회라고 생각하고 참여하지만 비슷한 퀄리티의 더 저렴한 원단과 부자재를 쓰거나 애초 발매 가격을 무진장 블프를 위해 인상한다는 사실이 과연 건강한 패션 생태계일까? 과거 무신사는 스몰 브랜드의 발굴과 육성에 힘썼지만 지금은 초심을 잃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조차도 타 유통망이나 플랫폼들에 비해 할인율이 높은 쿠폰 발급, 다양한 기획전 등으로 인해 갖고 싶은 제품이 있다면 무신사에 먼저 들어가 보는 게 사실이어서 소비자인 입장에서는 고맙지만 브랜드 입장에선 충분히 고역이다. 대형 플랫폼들은 모든 요구 사항을 다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소비자만큼이나 입점되어 있는 브랜드들의 고충도 적극적으로 들어줄 필요가 있다. 과거 신규나 스몰 브랜드 큐레이팅 시스템을 반영하여 블프 기간 동안에도 그들을 위한 전문관이나 특정 브랜드에 편중되지 않고 고르게 노출되어야 한다. 건강한 소비문화를 위해서라면 블랙프라이데이의 목적을 계속해서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내 온오프라인 플랫폼들은 입점 브랜드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브랜드들도 과도기를 겪으며 무진장 블프만을 위한 상품 기획이나 가격 인상 방법 대신 다른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특히 신규 브랜드나 스몰 브랜드라면 더더욱 블프를 통해 이익이 아닌 홍보와 재고 처리를 주 목적으로 두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