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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춥지만 마음은 따뜻한, 재작년 에디터가 감상하고 위로받은 한겨울의 영화들 본문
돌아오는 주 11월 27일 수요일에는 올해 첫눈이 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겨울이 되면 일출 시간은 늦어지고 일몰 시간은 빨라지면서 하루가 유독 더 짧게만 느껴집니다.
보통 현대인들의 특성상 여섯 시에 퇴근하고 회사에서 나오면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계절에 괜히 마음에도 짙은 어둠이 깔리는 것 같죠.
현대인인 키진의 에디터도 다를 게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의 여유는 늘 없었던 키진의 에디터지만 틈틈이 영화로 작은 위로를 받으며 환기하는 편입니다.
재작년 한겨울에 본 영화들에 대해 남긴 생각들을 꺼낸 후 큐레이션 했습니다.
1. <소공녀 (Microhabitat, 2017)>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자기 검열이 심해지며 마음이 또다시 나부낄 때 <소공녀>의 '미소'를 보며 힘을 얻었다. 처음에는 역시나 추운 겨울이 시작되고 나서 보자고 했던 영화인데 생각보다 잔잔한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 상관없이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라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미소는 꿈을 좇다가 현실에 부딪혀 포기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시각적으로 형상화 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이름 그대로 '미소'를 안겨주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위스키, 담배, 사랑하는 남자 친구만 있으면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자부하는 그녀의 자신감이 부러웠다. 우리야말로 스스로가 흔들릴 때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것들은 무엇일까?
2. <윤희에게 (moonlit winter, 2019)>
눈이 펑펑 왔었던 12월 중순쯤에는 <윤희에게>를 봤다. 홋카이도의 오타루를 배경으로 우리나라보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을 배경으로 했는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처럼 인물들 간의 잔잔한 기승전결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눈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실내에 있을 때 내리는 눈을 멍하니 보는 건 좋아한다. 고립되어 있는 느낌 속 평화로움이랄까. 집 문을 열고 나가면 오타루처럼 발이 푹푹 빠질 만큼 쌓여있을 것만 같은 일체감이 든다. 여담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주말이었던 다음날 친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뭐 없으면 나 홀로 나무 보러 갈래?'라며. 올림픽공원의 나 홀로 나무는 계절을 타지 않고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장소인 건 알고 있었지만 유독 눈이 펑펑 오는 때의 나 홀로 나무가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나 홀로 나무에 정신 팔려 있는 사이, 나랑 친구는 그 옆에 아무도 밟지 않은 땅에서 쌓인 눈을 맘껏 밟고 새로 구입한 장갑을 낀 채로 눈을 던지며 즐거워했다. 쌓인 눈의 아름다움을 가볍고 즐겁게 경험했다. 그리고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카레가락국수와 돈카츠까지 완벽했다.
3. <인턴 (the intern, 2015)>
22년이 되고 나서 가장 처음으로 봤던 작품은 영화 <인턴>이었다. 새해가 되고 나서 계획을 지독하게 세우는 계획형 인간이었으나 (물론 지금도 계획형 인간이지만.) 올해는 내 나이도, 상황도 부정하기보단 받아들이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래서 계획보단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찾았다. 킬링타임용으로 보기 좋은 것 같으면서도(영화 중간중간에 가벼운 유머요소들이 있다.) 줄스(앤 해서웨이)의 열정과 벤(로버트 드 니로)의 지혜를 엿볼 수 있어서 오랜만에 쉬지 않고 계속 봤던 것 같다. 두 인물 모두 내가 닮고 싶은 캐릭터였다. 힘이 넘치는 2,30대에는 분출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고 싶고 중장년층이 됐을 땐 젊은 날에 분출한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 지혜롭게 노력하고 싶다.
4.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5)>
일주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한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주제들의 모임들이 있었는데 나는 작년부터 기록에 관련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자극을 받는 것과 동시에 어떻게 기록을 현명하게 남기고 계신지도 궁금했다. 1주 차의 영화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과 바로 밑에 다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 였는데 작품을 미리 보고 만나게 됐다. 눈이 와서 본 영화는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눈이 많이 오고 추운 겨울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 영화여서 주제와 맞는 이 글에 넣게 됐다.
많은 분들이 <이터널 선샤인>에 대해 잘 아시다시피 나도 이 영화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 상황이었고 '언젠간 꼭 봐야지' 하고 역시나 메모장에 남겨둔 영화 중 하나였다. 처음 보는 거라 봤을 땐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처럼 느껴졌고 결국 이해가 안 돼서 유튜브에서 해석을 보고 한번 더 본 뒤에야 받아들여졌다.
예전에 미셸 공드리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인 <무드 인디고>를 봤을 때 독특한 연출기법을 알게 됐다. 현실성 있는 이야기들을 판타지로 연출하면서도 그 안에는 인물들의 슬픔을 잘 녹여냈다고 생각했다. 미셸 공드리는 이렇게 전개하는 와중에도 곳곳에 미장센을 부여한다.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클레멘타인의 헤어 컬러로 개인의 감정과 시간을 파악하기 좋은 요소 중 하나였다. 거의 완벽하게 이해와 해석을 하고 다시 영화를 보게 되니 처음과 너무 다르게 느껴졌다.
이 영화의 마지막을 보게 되면 내가 남기고자 하는 질문에 이해를 하실 수 있을 텐데 이 영화와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여쭤보고 싶다. 결말을 아는 사랑이라면 그래도 다시 시작하시겠냐고. 나는 무조건 'okay'다. 끝이 어떻게 되든 현재 상대에게 느끼는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니 불나방처럼 뛰어들겠다. 그게 설령 바보 같은 짓이라도.
5. <원더풀 라이프(Wonderful life, 1998)>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터널 선샤인>과 함께 보게 된 <원더풀 라이프>다. 이 작품 역시 언젠가 보자고 보자고 했었는데 게으른 내가 이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됐다. 이 작품 역시 마치 사계절 중 가장 마지막인 겨울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 이유는 인생 역시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겨울로 설정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작품 속에서 할머니 역을 맡으신 배우분이 계셨는데 사실 두 달 여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많이 생각났다. '우리 할머니도 더 좋은 세상에 가시기 전에 이런 곳을 거치셨을까'하며. 남녀노소 상관없이 연령대가 다양한 배우분들이 나온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각자의 인생 속에서 딱 한 가지의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갈 수 있는데 나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나의 행복을 평생 느끼기 위해선 어떤 기억을 갖고 가야 할까' 하며 계속 고민했었다. 그런데 자꾸만 바뀌는 것 같다. 곱씹어볼수록 다른 기억들도 생각나며 동시에 기존의 기억들도 버리기 싫은 마음이 들었는데 극단적인 걸 선호하지 않는 사람인 데다 (예를 들어 무인도에 가져갈 수 있는 딱 한 가지의 물건을 선택해야 하거나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사람들처럼) 평소 결정하는데 애를 먹는 나한텐 꽤 큰 잔인성(?)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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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unch Story / 2022년 1월 24일 글 발췌